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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숙 소장 경향신문 인터뷰 (2014년 3월 6일) 놀이 없이 공부만 한 아이들, 아는 건 많지만 생활 부적응도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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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4-03-12 14:35 조회6,1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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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가 밥이다]놀이 없이 공부만 한 아이들, 아는 건 많지만 생활 부적응도 많아 경향신문 

(5) 상담창구에 비친 놀이
# 초등학교 3학년인 희성(10·가명)이는 4세 때부터 영재교육을 받았다. 엄마는 희성이가 이미 중학교 수준의 지식 수준을 갖췄다고 자랑했다. 희성이는 또래 아이들이 읽지 못하는 영어책을 모두 읽어내고, 그 내용도 완벽하게 파악한다. 하지만 정작 “책 속에 있는 아이가 왜 슬펐을까? 왜 화가 났을까?”라는 질문에는 답을 하지 못한다. 희성이는 또래들이 즐겨하는 훌라후프도 잘 안다. 누가 처음 만들었고 그 재질이 뭔지, 어떤 원리로 회전하는지 알고 있다.

희성이는 그러나 훌라후프를 돌리지 못한다. 체스게임도 마찬가지다. ‘퀸’이나 ‘룩’ 등의 장기말이 어떤 규칙으로 움직이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막상 체스판 앞에 앉은 희성이는 멀뚱히 바라만 볼 뿐, 체스를 두지 못한다. 희성이는 훌라후프나 체스를 통해 한번도 놀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희성이의 지능은 또래 아이와 비슷한 수준이다. 지능검사에서 언어성은 만점에 가깝지만, 동작성은 평균 이하로 나왔다. 책에서 본 내용을 자신의 행동으로 나타낼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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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재석(8·가명)이는 자신을 “한자를 많이 아는 아이”라고 소개한다. 또래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는 스케치북에 재석이는 한자를 적는다. 또래들과 달리 변신로봇을 합체하거나 장난감 팽이를 조립하는 것을 재석이는 할 줄 모른다. 유치원을 함께 다녔던 아이들은 재석이가 한자를 잘 아는 것에 대해 관심이 없다. 다른 아이들에게 재석이는 변신로봇이나 팽이로 함께 놀 수 없는 아이일 뿐이다. 아이들과 벽이 생긴 재석이는 다른 아이의 스케치북을 찢는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나홀로 왕따’가 된 재석이가 아이들 사이에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택한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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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분히 놀지 못한 아이, 아는 것 행동에 못 옮기는

‘사이보그형’ 될 위험


▲ ‘놀이 학습’은 학습일 뿐 갈등 해결 능력 깨치는

관계성 지닌 ‘놀이’ 아냐


▲ 엄마들 슈퍼맘 되려 말고 쉬어야 아이와 놀 수 있어

또래들의 놀이와 격리되거나 친구들에게 공격적인 행동을 하다 상담창구를 두드리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놀이 시간을 공부로 채우고, 놀이도 머리로만 하다 ‘아파하는’ 아이들이다. 머리는 큰데 손과 발은 아주 조그마한, ‘ET’와 같은 모습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 아이에게 책만 쥐여주려는 조기교육 열풍의 그림자일 수도 있다.

2002년부터 아동상담을 진행해온 선우현 명지대 아동심리치료학 교수는 “과거에는 발달장애 등 선천적인 원인으로 상담하러 온 아이들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정서·행동 장애로 찾아오는 아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지적인 수준은 높지만, 아는 것을 실행으로 옮길 수 없는 ‘사이보그형 아이’ ‘백과사전형 아이’가 정서·행동 장애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 놀이가 없는 아이들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세상을 배울 기회를 잃어가고 있다. 세탁기를 돌리거나 전화를 받는 소꿉놀이를 해보지 못한 아이는 ‘나도 어른처럼 세탁기를 돌리고, 전화를 받을 수 있어’라고 유능감을 익힐 기회를 갖지 못한다. 역할놀이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마트 판매원이나 물건을 사는 손님인 것처럼 놀면서 마트라는 작은 세상에서 이뤄지는 언어를 배우고 그에 따른 행동을 배운다. 의사놀이, 선생님놀이, 아빠놀이, 전쟁놀이 등도 마찬가지다.

김명순 연세대 교수는 “아이에게 놀이를 뺏는 것은 세상을 배우는 기회를 앗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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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2학년 나정(9·가명)이는 늘 ‘착하고 올바른 사람’이 되라고 가르침을 받았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엄마는 나정이에게 “이런 행동은 옳지 않으니 그렇게 하면 안돼” “네가 잘못을 했을 때는 반드시 네가 사과를 해야 해”라고 가르쳤다. 그러다 최근 네 살배기 동생을 무섭게 훈계하는 나정이를 보고 엄마는 놀랐다. 나정이가 얼굴을 잔뜩 붉힌 채로 동생에게 “네가 잘못했으니까 네가 나에게 사과를 해야 해”라고 다그친 것이다. 딱딱하게 굳은 훈계조의 나정이 얼굴은 학교생활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나정이는 친구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시시비비만 따지며 ‘그 친구가 나쁜 행동을 하고도 사과를 하지 않았으니, 나쁜 아이야’라고 생각한다. 나정이는 동생과 친구가 어떤 상황에서 그런 행동을 하게 됐는지 이해하려 하거나 문제를 화해로 풀려는 생각이 없다. 그렇게 할 줄도 모른다. 나정이가 친구들과 멀어지고 단절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정이는 제대로 놀지 못하고 자란 또 다른 피해자다. 친구들과 함께 몸으로 놀아보지 못한 아이는 사회성을 키우지 못하거나 더디다. 놀이는 상상과 그에 따른 규칙 안에서 이뤄진다. 가령 전쟁놀이를 하는 아이들은, ‘탕탕탕’ 하는 목소리와 함께 실제 총알이 발사됐다고 상상하며 논다. 이 상상에 동의한 아이들끼리 함께 놀이가 이뤄진다. 그러다 놀이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면, 자연스레 새로운 상상과 규칙이 생겨난다. 아이들은 이 과정에서 수많은 갈등 상황을 만난다. 이때 아이들은 상대방을 이해하고,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며, 타협하는 방법과 내성을 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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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상담창구를 찾은 나정이 엄마도 유년 시절 행복하게 놀아본 경험이 없다. 그는 부유하고 엄격한 환경에서 많은 것을 누렸지만, 오빠나 친구들과 정신없이 놀아본 경험은 거의 없다고 했다. 나정이 엄마는 “요즘 나정이 모습을 보며 ‘나도 어렸을 때 사람들과 충분히 놀지 못했구나’라고 느끼게 된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아이들에게 놀이를 허락하지 않는 부모들은 대개 ‘슈퍼맘 콤플렉스’에 빠져 있거나 자신이 놀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놀아본 경험이 없거나, 놀 때 느낀 행복에 대한 기억이 흐릿한 부모에게 놀이는 ‘쓸데없는 짓’ ‘왜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시간 낭비’로 보인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쓸데없는 짓을 그만두도록 유도하는 것을 의무라고 생각한다.
이향숙 한국아동청소년심리상담센터 원장은 “아이들에게 ‘언제 사랑받는다고 느끼느냐’고 물으면 ‘엄마가 나랑 놀아줄 때’라고 답한다”며 “부모들과 아이들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것이 놀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부모에게 원죄를 씌우는 것은 최악의 처방이다. 전문가들은 상담창구에 아이를 데려온 엄마에게는 ‘친정이 가까이 있느냐’는 질문을 제일 먼저 던진다고 한다. 최상철 디딤소아정신과클리닉 원장은 “모든 성인 부모가 ‘유아교육과를 나온 것이 아니다. 부모라고 완벽할 순 없다’고 생각하면 ‘엄친아의 엄마’라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아이들과 놀고 싶어도 놀 시간이 없다고 항변하는 부모들도 많다. 하지만 ‘놀이는 사소한 것’이라는 생각을 갖는다면, 달라질 수 있다. 김지훈 부산대 어린이병원 정신건강클리닉 교수는 “ ‘엄마가 퇴근 후에 하루 30분 동안 너와 꼭 놀 거야’라는 식으로 아이가 놀이 시간을 예측하도록 하고, 이 시간에는 완전히 집중해서 노는 것이 중요하다”며 “다만 부모는 아이보다 한발자국 뒤에서 따라간다는 느낌으로, 아이에게 놀이의 주도권을 주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한익 서울우리아이마음클리닉 원장도 “아이와 노는 것이 재미있어지려면 부모가 아이의 나이로 퇴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참교육학부모회·서울 노원·도봉구청 공동기획>

<곽희양 기자 hu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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